도서 소개

[신간소개/시] 간밤의 폭풍은 감추어 두겠습니다, 정능소 지음

메이킹북스 2025. 9. 10.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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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책의 제목에서 가장 주목하게 되는 것은 “감추다”라는 동사이다.

“감춘다”는 것은 단순한 은폐가 아니라, 삶이 주는 고통과 회오리를 스스로 견디어 내기 위한 행위다. 시인은 일상의 가장 작은 결에도 세계의 진실을 새겨 넣는다. 정능소의 시에서 “감추어진 것”은 단순한 비밀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내는 슬픔과 사랑, 상처와 기억의 또 다른 얼굴이다. 감춤을 통해서만 비로소 드러나는 진실, 그것이 이 시집이 독자에게 전하는 시적 울림이다.

종이책의 자취마저 희미해지는 시대에, 정능소의 시는 묻는다. 격랑의 끝에 무엇이 남아 있는가. 우리는 무엇으로 남을 것인가. 그 물음은 독자를 삶의 가장 내밀한 층위로 이끌고, 언어로 도달할 수 있는 진실의 한 귀퉁이를 보여준다.

 

 

출판사 서평

 

소슬바람, 그대

 

 

지난 밤, 한바탕 폭풍이 다녀갔다. 세찬 바람 잦아들고, 귀를 찢는 울음소리도 멈춘 후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무너진 자리에서만 오롯이 쓸 수 있는 문장이 있다.

<간밤의 폭풍은 감추어 두겠습니다>는 폭풍 이후에 비로소 시작하는 시집이다. 정능소의 시는 폭풍 그 자체가 아닌, 그것이 휩쓸고 간 풍경의 뒷면을 오래 들여다본다.

 

시인에게 생은 신비와 비정함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한줄기 실바람에도 목련은 부서지고”(무명천), “살아 숨 쉬는 풀 잎사귀 하나에도 강이 깊고, 불길이 흐”(달항아리)른다. “우연이란 이빨 사이로 요리조리 잘도 피해” 왔으나, “한 치 오차 없이 떨어지는 기요틴의 칼날”(부러진 말뚝)을 맨몸으로 마주하는 곳이다.

 

시인은 생의 낙차를 고스란히 견뎌낸 자리에 남은 것들, 허물어지고 무너지고 부서진 것들의 목소리에 주목한다. 실금 간 채 가까스로 버티는 이들을 향해 몸을 돌린다. 시인은 고통을 바로 보되, 결코 고통에 매몰되지 않는다. ‘산다는 일은 슬픔을 느낄 일이 많’음을 깨닫는 과정이지만, 한편으로 ‘사람 마음에는 슬픔을 무디게 받아들이도록/ 한 겹 깔판이 있다는 것’을 역설한다.

 

폭풍이 휘몰아치는 밤에 그대, 세상없이

곤히 자더군요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지붕은 들썩이며 고양이 울음이 폭풍 속에서 메아리쳐도

 

꿈속 고요함을 즐기듯 미동이 없었습니다

 

어둠 속으로 모든 것이 빨려들어 빙빙 도는 소용돌이 기둥을 보았습니다

 

밤하늘 가득 혼돈의 신(神)이 핏발 선 눈으로 구리종 울리는 소리로 울부짖으니

 

잡신들 두려움으로 벌벌 떨어도

고른 숨을 쉬던 그대여,

 

심장이 쿵쿵 뛰어도 그대는 아무 일 없는 듯 평온하게 아침을 맞더군요

 

간밤의 폭풍은 감추어 두겠습니다

 

<폭풍이 지난 후>

 

폭풍은 지나갔고, 흔적만 남았다. 시인은 헤집어 드러내는 대신, 감춤을 선택했다. 폭풍을 온전히 품은 자만이 보일 수 있는 지긋한 배려다. 말하지 않고도 말해지는 것들이 있음을, 잊힌 듯하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은 것들이 있음을 아는 까닭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자신의 세계를 써내려 가는 일일 테다. 시를 읽는 일 또한 그러하다. 어떤 고통도 함부로 위로하지 않고, 슬픔을 회칠하여 치장하지 않는 정능소의 한 세계를 통해 독자는 역설적으로 알게 될 것이다. 애써 감추었던 격랑의 시간이 결코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누군가의 시가 당신을 위해, 그 밤을 함께 견뎠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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