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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세이 / 구간의 재발견] #2 믿음이 100°C가 된다면

by 마케팅은 누구나 2020.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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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부터 신약까지 이르러 관찰되는 하나님의 모습은 인간 아버지들이 자신의 자녀를 대하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문제아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신다. 그러나 그 모든 행동은 문제아를 변화시킬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강제성을 띤 ‘복종’이 아니라 자발적인 ‘순종’이다.

 

그러나 사탄은 강제적으로 자신에게 복종시키려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자녀의 지속된 문제 행동을 개선하기 위해 부모들이 가장 먼저 선택하는 것은 ‘체벌’이다. 하지만 그런 방법이 아이의 방황을 바로잡지 못한다는 것을 경험해 본 부모들은 후배 부모들에게 말한다.

 

“나중에 후회할 일 만들지 말고 그냥 잘해 줘. 잘해 주는 것밖에 없어.”

 

사람으로 하여금 잘못된 행동을 스스로 돌이키게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랑’이다. 상대방을 미안하게 만들 정도의 사랑, ‘은혜’라는 단어를 언급하게 만들 정도로 커다란 사랑 말이다.

 

고등학생 딸아이의 흡연 사실을 알게 된 봉순 씨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녀가 부엌칼을 들고 딸에게 함께 죽자고 소리치자 딸은 손바닥을 싹싹 빌며 용서를 구했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매를 맞아도 소용이 없었다. 다신 안 그러겠다는 딸의 다짐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봉순 씨가 모든 격한 감정을 내려놓고 자신의 딸에게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하는지, 왜 네가 담배를 끊었으면 좋겠는지’ 사랑을 담아서 차분히 이야기하자 기적이 일어났다. 즉시로 그녀의 딸이 담배를 끊은 것이다. 이것은 봉순 씨의 딸, 상미 본인의 고백이다.

 

 

사랑은 사랑에 반응한다.

사랑만이 사랑의 감정을 유발할 수 있다.

완벽한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자신에게 그런 사랑을 준 상대방에게 구속되기 마련이다.

 

 

그것은 강제성이 전혀 없는 자발적인 구속으로 상대방을 위해 사는 것이 오히려 기쁘게 느껴지도록 만든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죄를 미워하게 되는 이유이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사실을 정말로 믿을 때, 왜 마음껏 죄를 지으며 살 수 없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주님을 영접하는 기도문을 따라 한 사람 중에서도 계속해서 죄를 짓는 사람이 있다. 엄밀히 말해 모든 기독교인은 사는 동안 계속해서 죄를 짓는다. 이들 중에는 고의적이고, 반복적이며, 양심의 가책 없이 죄를 짓는 이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은 존재들이 분명하다면 그들이 지은 죄로 인하여 지옥에 가지는 않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정말 구원받았을까?

 

 

정말 구원받은 사람이 맞다면

그는 사람을 100명 죽여도 지옥에 가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설교를 하는 목회자가 있다면 그는 온 교회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될 것이 분명하다. 성경 역시 이런 극단적인(?) 해석 뒤에 올 수 있는 부작용을 우려하여 자체적으로 밸런스를 유지하고 있다.

 

 

정말 구원받은 사람이 분명하다면 죄를 지어도 지옥에 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정말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그런 식으로 죄를 짓지는 않는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구원의 밸런스’이다.

 

누구든 완벽히 구원받은 상태가 맞다면 그 상태가 되돌려지는 일은 없다. 그러나 아직 완벽하게 구원을 받은 상태가 아니라면 지옥행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구원을 얻기 위해 요구되는 믿음의 온도를 100℃로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믿음의 온도가 99℃에 달해도 그 믿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1℃나 50℃나 90℃나 모두 지옥에 갈 온도일 뿐이다. 물이 끓기 위해서는 정확히 100℃가 되어야만 한다. 주님을 믿기로 선택하자마자 그 자리에서 즉시 완벽한 믿음을 소유하게 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반면 10℃ 미만의 믿음을 소유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 아예 1℃도 믿지 않으면서 분위기 때문에 앵무새처럼 영접 기도문을 따라 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이들은 구원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들은 죽게 되면 지옥에 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성경에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는다고 되어 있는데요! (행 2:21)

 

 

그러나 마태복음에서는 이와 상반되는 구절이 기록되어 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21)

 

실천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 실천이 중요한 이유는 첫째, 실천을 통해 우리의 믿음 온도를 체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우리의 부족한 신앙 온도를 높여 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실천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니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나의 이 말을 듣고 실천하지 않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니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면 그 무너짐이 심하리라 (마태복음 7장 中)

 

이 구절은 ‘물을 끓이는 것’에 대한 구원의 비유와 일맥상통한다. 100℃에 도달한 구원처럼, 한 번 완성된 구원의 집은 어떤 시련이 와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자는 지반이 약한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도 같아서 시련이 닥치면 붕괴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구원의 믿음을 100℃까지 끓어 올리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바로 물 끓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 〈사랑을 선택하신 이유〉 중에서

 

 

 

 

 


 

구원에 대해 지금까지 이런 접근 방식은 없었다.

구원은 믿음으로만 주어진다. 그러나 행함이 없는 믿음은 거짓 믿음이다.

믿음으로만 주어진다면서 행함을 논하니 이것은 구원의 모순일까?

 

구원에 대해 이렇게까지 섬세한 설명이 있을까? 누구도 풀어서 설명하지 않았던 구원의 메커니즘, 복음이 한 영혼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기술적 원리를 설명한다. 3대째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모태신앙으로 자라왔지만 스무 살이 넘어서야 복음을 깨닫게 된 저자, 자신처럼 복음을 깨닫지 못했을 누군가를 위한 메시지가 시작된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686253

 

구원의 밸런스

구원에 대해 지금까지 이런 접근 방식은 없었다. 구원은 믿음으로만 주어진다. 그러나 행함이 없는 믿음은 거짓 믿음이다. 믿음으로만 주어진다면서 행함을 논하니 이것은 구원의 모순일까?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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